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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초기 교단의 경제
 스님  | 2005·03·15 10:19 | HIT : 4,995 | VOTE : 904
초기 불교교단의 경제적인 면을 중심으로 하여 사찰의 확보와 그 사찰의 운영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교단이 발전함에 따라 서서히 사원을 갖게 된다. 이 사원은 물론 출가자들이 공동으로 수련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출가수행자들이 자력으로 이것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주로 독지가들의 희사에 의해서 이와 같은 것이 이루어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야기로는 기원정사에 얽힌 것이다. 기원정사란 인도의 북부지역 코살라의 영토안에 있는 절이다. 그 내력에 대해 불교경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코살라국에서 진리의 법을 펴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수달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특히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보시를 하였다. 그래서 별명이 급고독장자였다고 한다. 고독한 이들에게 옷, 음식물, 금전 등을 많이 베풀었던 까닭에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재가신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자는 부처님이 있는 곳에 와서 참배를 하고 부처님이 나무 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보았다. 기수급고독장자는 가슴이 아팠다. 위대한 분을 저렇게 소홀히 모실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의 원을 세웠다. "저분을 위해서, 저분의 제자들으 위해서 자그마한 집이라도 마련해 줄 수 있기를........"
그는 돈 많은 장자였으므로 코살라 내에서 가장 좋은 땅이 어디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땅은 기타태자의 별장이 있는 곳이었고, 팔지도 않으려 하였다. 장자는 끈질기게 매달려서 그 땅을 팔기를 간청하였다. 그 별장의 주인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왜 이 땅을 사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천 금을 주어도 팔지 않겠소. 만약 이 땅을 전부 금으로 덮는다면 내 팔리다."
주인은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고 외출을 하였다. 그가 돌아와 보니 장자가 온 정원과 동산을 온통 금으로 깔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기겁을 하였다.
그러자 장자는 말하였다.
"이미 말씀하셨지요? 이 땅을 황금으로 뒤덮으면 팔겠노고......."
그 주인은 탄복하였다.
"이 세상 사람들은 황금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일이 허다하오.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쉽게 버리려 합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부처님을 존경합니다. 그분은 이와 같은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이 땅을 사서 그분이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주인도 그 말에 감복하여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본 적은 없지만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여 이 땅을 황금으로 뒤덮을 정도이니, 그는 분명 위대한 성인인가 보오. 나도 그 분께 이 동산의 숲을 바치고, 이제부터 당신을 따라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급고독장자와 기타태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기수급고독원, 줄여서 기원정사라고 불리고 이 사원은 이렇게 하여 성립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 기원정사의 터는 실라벌이라고 한역되는 쉬라바스티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기원정사에는 부처님의 설법 터가 남아 있고, 부처님이 직접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난다가 기념식수를 했다는 아난다 보리수가 서 있다. 절터의 규모로 볼 때, 매우 컸던 절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훌륭한 절이다.
불교교단 최초의 절은 영축산정 밑에 있었던 죽림정사로, 그 곳은 우루벨라라고 불리웠다. 기원정사는 그 보다는 후기의 절이지만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사원은 그 성격으로 보았을 때, 차이티야(caitya)와 비하라(vihara)로 나눌 수 있다.
차이티야는 예배소, 예배당에 해당하고 비하라는 정사(精舍)가 된다. 그러므로 차이티야는 불교적 예배를 위한 곳이고, 비하라는 스님들이 머무는 승방이다.
또 인도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석굴 사원이 많이 있다. 세계의 미술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아잔타, 엘로라 등의 석굴이 남아 있다. 더운 지역이기에 굴을 파서 만든 이러한 석굴 사원은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였기 때문에 많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존 당시에는 그런 석굴 사원은 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잔타 석굴의 경우, 기원전 3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도 있다. 불상이 없었던 시대, 즉 간다라 예술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의 석굴 사원들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부처님이 입멸하고 나서 아쇼카 왕이 등극하였던 시점에 인도의 석굴 사원이 많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석굴 사원을 건립하는 데는 엄청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했으리라고 본다. 이것은 적어도 국가적인 배려 내지는 수많은 부유한 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던 역사였을 것이다. 불교교단에 시여, 보시하는 경제물들은 주로 우바이,우바새들이 맡았고, 출가수행자들은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원적이고 이중적인 구조로 초기 불교교단의 경제가 운영되었다. 더군다나 스님이 지켜야 할 계율로서 금은보화 같은 것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엄금되었다는 것이 율장에 나타난다. 그것을 통해 보았을 때, 교단의 경제를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마도 재가신자들의 몫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된다.
부처님의 열반 후 다비를 하였을 때, 한량없는 진신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의 불교국이었던 나라의 군왕들이 이 진신사리르 봉안하기 위해 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탑이란 인도말로 스투파에 해당한다.
이 스투파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즈음이 되는 기원전 2-3세기경이 되면 탑들이 여러곳에 세워지게 된다. 그것은 기존의 차이티야나 비하라와는 다른 형태로 운영, 조직될 수 밖에 없었다. 즉, 차이티야와 비하라가 기성 불교교단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스투파, 즉 탑 지역은 기성 교단의 통제에서 벗어난 별도의 기구로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스투파 지역은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참배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순례의 코스가 되는 곳이다. 부처님이 사리의 형태로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보니 점차 보시되는 물건이 생겨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투파 지역을 청소한다든지 향을 피워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점차 기성 교단과는 별개로 스투파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출가자도 아니고 재가자도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그룹들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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