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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교단의 성립과 발전
 스님  | 2005·03·15 10:08 | HIT : 8,775 | VOTE : 830
초기 불교교단의 형성과 발전은 과연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겪었는가. 또 초기 승가의 규율은 과연 어떠한 것들이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초기 불교교단의 형성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이
는 십대제자에 대해 서술한다. 위대한 성인에게는 언제나 그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불교는 그 성격상 출가승려들과 재가신자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두 그룹이 나중에 승가로 불리워지게 되는데, 이 승가의 조직과 발전에 있어서 십대제자의 활약이 가장 뛰어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적으로 십대제자들은 각각 부처님의 덕성 가운데 하나씩을 뛰어나게 전수받았다고 하여, 이를테면 '다문 제일의 아난다', '천안 제일의 아나율' 등으로 부르는데, 그들 중에서 사리불과 목련건이 가장 연장자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원래 이교도였다. 그들은 산자야가 이끄는 회의론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5백명의 제자와 함께 불교교단에 귀의함으로써 불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두 제자는 부처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두 제자의 세속적인 연령이 부처님보다 열 살 정도 더 높았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열반 후에는, 남은 여덟 제자 중에서 마하가섭이 교단을 조직하고 통솔하는 실질적인 책임을 맡았다.
마하가섭이 교단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부처님이 입멸할 당시 마하가섭이 그 장례식에 참석할 때까지 장례의식의 집행을 늦추었다는 기록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마하가섭은 먼 곳에서 석가의 입멸이라는 비보를 듣고 황급히 쿠시나가라로 왔다. 그리고 공손히 세 번 절하여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마하가섭의 집전으로 드디어 다비의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마하가섭은 선종의 초조로도 알려져 있다. 선의 수련방법은 물론 인도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을 종파로서 확립시킨 것은 중국이다. 중국에서 '선종'이라는 혁명적이고 위대한 가르침의 종파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 선종에서는 부처님의 마음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가 바로 마하가섭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이심전심'이니, '염화시중'이니 하는 고사성어들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언젠가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었을 때,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그때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에 그 교두보 역할을 한 제자가 바로 마하가섭이었다고 믿는 중국적인 전통도 여기에 기인한다.
아무튼 이 마하가섭은 불멸 후의 교단을 수습하는데 가장 중요한 책임을 졌던 제자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팔리이다. 통상 지계 제일 우팔리라고 부른다. 계율을 잘 지키는 데 있어서 으뜸가는 제자이다. 우팔리 존자가 계율을 잘 지키는 제자가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원래, 부처님의 제자 열 사람을 가문별로 분석을 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귀족적인 상층 계급에 속한다. 그러나 우팔리만이 천민 수드라 출신으로서, 출가 전에는 이발사였다. 우팔 리가 불교에 입문하는 수계식을 할 때, 부처님이 머리를 깎아주면서 '그대는 이러이러한 세속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주었다. 우팔리는 그때 부처님이 주었던 계율을 지킴에 있어서 으뜸이었기에, 지계제일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또, 천안 제일 아니룻다(아나율)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그에 대해 불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언젠가 아니룻다는 부처님이 설법할 때 졸았다고 한다. 그러자 부처님이 '그래서는 안된다. 출가한 사람은 게으름을 쫓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아니룻다는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과 참회하는 마음이 앞섰다.
'내가 삼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가하였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리고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다니.........'
이렇게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밤낮 부릅뜬 눈으로 정진하였다. 그런 아니룻다를 부처님은 여러 차례 만류하였다.
"아니룻다여, 공부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룻다여, 쉬어가면서 하라."
그러나 아니룻다는 굳은 결심으로 밤낮 열심히 공부하다가 그만 몹쓸 안질에 걸렸다. 결국은 시력을 상실하여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까지 이해할 수 있는 천안이 열렸다. 즉 심안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를 천안제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본존불 주변에는 열 분 제자가 선 채로 부처님을 시립하고 있다. 그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아니룻다가 눈을 감은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 다문제일 아난다를 들 수 있다. 아난다는 개인적으로는 부처님의 이종사촌 동생이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출가하여 부처님을 시봉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난다는 그림자처럼 부처님 곁을 맴돌면서 근 40년을 지냈다. 그 공덕으로 부처님이 제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을 위해 설법할 때, 가장 많이 설법을 듣고 기억하는 제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대장경을 편찬하는 일이 있었을 때, 아난다는 다문제일답게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술술 외우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경전을 편찬하는 주요한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밖에 아난다는 여인의 출가를 허용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부처님은 초기에는 여성의 출가에 대하여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아난다의 간청으로 인하여 비로소 여인의 출가가 허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십대제자 중에서 대개 마지막으로 열거되는 라훌라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보면 라훌라는 부처님의 한점 혈육, 친아들이었다. 흔히 그를 밀행제일이라고 한다. 라훌라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연유로 처음에는 교만한 면모를 보였다.
하루는 부처님이 이를 알고 라훌라를 찾아갔다. 그리고 라훌라에게 발을 씻기도록 한 뒤, 그 물을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라훌라는 발을 씻어 물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마실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이 물과 같다. 이 물은 본시 깨끗한 것이었는데, 이제 더러워졌다. 너 또한 왕의 손자로 태어나 출가하였는데, 수행은 멀리하고 계도 지키지 않으니, 삼독의 때가 마음속에 가득하여 마치 이 더러운 물과 같다."
그런 다음 부처님은 그 물그릇을 힘껏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는 라훌라에게 그 물그릇이 깨지는 것이 걱정되느냐고 묻자, 라훌라는 그 물그릇은 값이 싸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해를 끼쳤으니 이 그릇처럼 그들로부터 사랑이나 아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라훌라는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깊이 뉘우친 후, 깨달음을 위해 열심히 정진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라훌라 존자를 바로 밀행제일의 제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상으로 부처님의 십대제자를 모두 언급하지는 못했으나, 초기 불교교단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몇몇 제자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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