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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사무량심(四無量心)
 스님  | 2005·03·12 22:56 | HIT : 3,392 | VOTE : 606
  사무량심은 네 가지의 한량없는 마음이다. 이는 네 가지의 범행(梵行), 즉 훌륭한 행동이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그 네 가지란 자(慈),비(悲),희(喜),사(捨)이다.
흔히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물론 불교는 자비를 실현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훈고학적으로 볼 때 '자'와 '비'는 뜻이 상이한 말이다. '자'란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일이다. 반면에 '비'란 다른 생명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비는 서로 같지 않은 두 뜻이 복합되어 있다.

첫째, 자(慈)란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는 것이다. 베푸는 것이 받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다. 가능한한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이다.
자비는 결코 물질적인 베풂에 한한 것이 아니며, 부드러운 말씨, 웃는 얼굴도 베푸는 것의 하나이다. 베풀라! 부처님의 가르침따라 한없는 베풂을 통해서만이 진실한 얻음이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비(悲)는 상대방의 고통을 제거해 주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이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그 사람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을 것이다. 또 연민이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이상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그것은 상대방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불교의 사고 경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릴 것을 요구하는 점이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다. 자연을 떠난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행복이 자연으로부터 올 수 있다고 한다면, 자연을 보호한다는 발상조차 없는 종교가 불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곧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조차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悲)란, 온전하게 나와 남의 동일성의 확인에서 싹틀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남의 고통을 제거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범망경> 속에서 부처님은 10중 48경계를 말하였다. 그중에 동식물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구해내야 된다는 것이 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까워서 동물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도 죄목에 걸린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남의 고통을 없애주기는커녕 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세 번째, 희(喜)란 남의 즐거움을 같이 기뻐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기쁨이란 나누어 가질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누어 가질수록 적어진다. 나의 기쁨을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하는지, 시기,질투에 의해 마지못해 칭찬해 주는 것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남의 잘못을 오히려 내 스스로의 탓으로 되돌리고, 남의 훌륭한 일은 격려해 주는 일이 불자의 도리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남의 격려하는 일에 인색하기 쉽다. 게다가 남의 잘못은 침소봉대해서 크게 얘기하고, 자기 스스로의 잘못은 적당히 눈감아 버린다.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오뉴월의 훈풍과도 같은 부드러움으로 감싸줘야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추상 같은 기개로 다스려야 한다.
<법화경>에 상불경이라는 이름의 보살이 나온다. 상불경이란 '항상 남을 업신여기지 아니한다'라는 뜻이다. 상불경 보살은 하루종일 동구 밖에 서서 절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절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맺는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를 불문하고, 배운 이건 배우지 못한 이건, 걸인이건 부자이건 간에 그들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한다. 그 보살이 상징하는 바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의 업신여기지 않고, 남의 기쁨을 내 것으로 삼는다. 여기에 상불경보살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상불경
보살과 같은 이들이 되어야 한다.

네 번째, 사(捨)는 버리는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을 뜻한다. 즉, 고락과 희비를 초월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경지이다.
<노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僞學日益 爲道日損(위학일익 익도일손)
만약 그대가 배움을 위하거든 하루하루 더 해가라. 그러나 만약 그대가 도를 위하거든 하루하루 떨어뜨려 버려라.

이것은 내가 남보다 잘나고 더 낫다고 하는 교만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버림을 통해서 진실로 위대한 경지가 얻어진다는 것이다.
또 선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百尺竿頭進一步 大夫兒(백척간두진일보대부아)
천 길 만 길 낭떠러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대장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버린다는 경지에 합치하는 것이다. '내가 차마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차마의 마음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때, 진실한 진리의 경지가 열려진다. 천 길 만 길 낭떠러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정신이 버리는 정신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인류의 핵전쟁의 위협, 오존층의 파괴, 공해의 문제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되는 이면에는 버리는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가지기에 급급하고 버리는데 인색하기에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버릴 때, 진실로 얻는 것이라는 인식의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버리는 정신을 다른 말로는 무소유라고 한다. 무소유, 사의 정신에서 창조적인 의지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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