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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수행의 길
 스님  | 2005·03·12 22:41 | HIT : 6,471 | VOTE : 917
  부처님의 깨달음과 범부의 깨달음, 그 차이는 영속성과 일시성에 있다. 부처님은 영원한 깨달음의 세계 속에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깨달음을 일순간만 깨닫고 그 다음 순간에는 잊어버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깨달음을 추구해야 한다.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내재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속화시켜야 한다. 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초기 불교에서는 이러한 수행법을 37각지 또는 도를 얻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여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하는데, 사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가 그것으로, 이 모든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다.
먼저 사념처와 사정근에 대해서 알아본다.
사념처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신념처(身念處)란 몸이 깨끗하지 못함을 아는 것이다. 수념처(受念處)는 모든 생각은 허무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법념처(法念處)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만다는 무아(無我)의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념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바르게 깨닫기 위한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늘 있지 않는 세계를 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영원하다고 믿기에 번뇌와 집착이 생기고 서러움과 비탄에 젖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하지 않다고 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괴로운 세상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 생겨난다. 이상과 같이 사념처는 열반의 네 가지 특징인 상락아정을 그릇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전도견(顚倒見)이라고 한다. 즉, 뒤바뀐 꿈과 같은 생각이라는 뜻이다. 깨끗하지 못한 몸을 깨끗하다고 착각하고, 고통스러운 감각을 즐겁다고 생각하며, 무상한 모든 생각을 영원하다고 고집하고, 또 모든 것이 무아인데도 불구하고 '아(我)'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착각이 생긴다. 이 전도견에 관련된 인도설화가 있다.

나는 중생을 낳은 아버지인데, 내 아들인 중생들이 나를 자기의 아들로 삼아 버렸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 인간들이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돈의 노예가 되고 만 현대인의 모습에서도 이 설화와 같은 뜻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과 욕망은 분명히 같은 범주에 있지만 상위개념이다. 그러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전도의 삶을 살아간다. 주와 객의 전도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사념처가 철학적인 반면 사정근은 보다 윤리적인 면이 강하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하라.
아직 생긴 악은 아주 끊어버려라.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게 하라.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증장시켜라.

이것은 나중에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해야 한다. 그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다. 마치 잡초의 뿌리를 뽑아 제거하듯이 번뇌나 악도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것은 무명을 없애는 것이며, 삼독 중의 치(痴)와 같은 근원적인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일이다. 단, 이미 생겼던 죄는 참회해야 한다. 우리가 절에 가서 신행을 할 때는 부처님같이 되고자 하는 원행을 심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업장을 소멸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한 불교의 수행이다.
동시에 똑같은 논리로, 아직 생기지 않은 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아주 극악한 사람일지라도 조금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남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맑게 가꾸는 일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갖고 있는 진리의 샘터에서 이와 같은 선, 용솟음치는 선에의 의지를 북돋워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자기 성철 내지 자기 노력없이 결코 선인이 될 수 없다. 또, 이미 생긴 선을 더욱 증대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사정근은 윤리적인 실천에 해당한다.
사념처와 사정근을 통해서 철학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갖도록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37조도품>의 제일 첫머리에 언급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사신족이란 사여의족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은 이 네 가지의 신통스러운 자유자재로움을 얻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근과 오력이란 수행 정진하는데 필요한 다섯 가지의 마음가짐과 힘이다.

첫째는 신(信)으로 믿음이다.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 강조하는 것은 불교를 왜소화시키는 것이다. 우선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려움과 이데올로기적인 갈등과 혼란을 없앨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이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
침을 믿고 따르는 승단이야말로 가장 화합된 집단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연후에 삼보를 확인하는 일심(一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교적 믿음을 단순하게 절대자를 믿는 것으로 왜소화시켜서는 안된다. <37조도품>을 닦아 나가는데 있어 필요한 다섯가지 힘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둘째는 정진(精進)으로 노력이다.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 채찍질이 있어야 인격의 발전이 있게 된다. 고려의 명승 보조국사 지눌은 '사람이 태어날 때 몸안에 여섯 도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눈.귀.코.혀.몸.마음의 도적이날뛰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불교 공부란 이러한 여섯 도적이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진이란 쉼없는 채찍질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어러한 정진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는 염(念)으로 올바른 기억이다.

넷째는 정(定)으로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다섯째는 혜(慧)로 올바른 지혜이다.
이와 같이, 오근과 오력이란, 다섯 가지 마음가짐과 그로부터 발휘되는 다섯가지 힘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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