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홈 | 불교학당 | 불교입문
 

TOTAL ARTICLE : 91, TOTAL PAGE : 1 / 5
구분 절과 부처님 | 불교란 무엇인가? | 부처님의 생애 | 불교의 세계관 |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움직이는가? -연기법 | 해탈에 이르는 길 | 현대사회와 불교 | 대승불교의 역사와 정신 | 한국불교의 역사와 고승들 | 불자의 수행과 신행생활 | 불자로서의 다짐 | 교리강좌 |
교리강좌 : 사법인(四法印).무상과 깨달음
 스님  | 2005·03·11 15:15 | HIT : 3,416 | VOTE : 578
  대체적으로 불교의 승단 구성에 대하여 말할 때, 불.법.승 삼보를 언급한다. 그리고 불교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즉, 삼보 가운데 불(佛)에 대해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제 법(法)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법이라는 개념은 시대적으로 상당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는 지역적으로 보면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호응을 받았고, 연대로 보아도 2천 5백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만큼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부처님의 법, 진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함의 법이란 석가모니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뜻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인이라고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열반적정의 네 가지이다. 그중에서 일체개고를 제외하고 삼법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삼법인이건 사법인이건 간에 그 대의는 대동소이하다.
첫째, 제행무상이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의 모든 행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외면적인 무상을 지적한 것이다.
서양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였다.

만물은 유전한다. 아무도 동일한 강물에서 다시 목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흐르는 물도, 그 물에서 목욕하는 나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분명히 어릴때의 모습이 아니다. 얼굴, 목소리 모두 변했다. 또 얼마 후에는 죽음이라는 영겁의 피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즉, '나'라고 하는 개인적인 주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모습과 달라져서 끝내는 무의 모습으로 화하게 된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동일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또 생물 뿐만 아니라 무생물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광물까지도 변화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광물도 플러스,마이너스의 스핀 운동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고 그 실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제행무상의 법이다.
둘째, 제법무아란 앞서 말한 제행무상이 외형적이고 시간적인 표현인데 반해, 내면적이고 공간적인 표현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에는 내면적으로 변할 수 없는 어떤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종교의 목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아트만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면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대 인도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영원한 자아, 아트만에 대한 직접적인 부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부처님은 내면적으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어떤 성품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면적으로 변할 수 없는 어떤 것, 서양 종교에서 흔히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육신이라고 부르는 것과 결합함으로써만 제 기능과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육신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논리적으로 보면 고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변할 수 없는 어떤 내재적인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제법무아라고 하였던 것이다.
셋째, 일체개고란 모든 것은 괴롭다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한 곳에 고정된 것들은 썩기 마련이다.인간의 불행, 생명의 불행은 어디서 싹트는가? 제법무상하고 제법무아인 도리를 알지 못하기에 괴로움과 슬픔이 생겨난다.
다시말해,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인 도리를 깨닫는다면 일체가 괴롭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한 제행을 무상하지 않다고 고집하고, 무아인 제법을 아(我)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싹튼다는 것이다. 비탄과 슬픔, 그 모든 것들은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데에서 생겨난 오류일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괴롭게 인식되는 까닭은 그와 같은 그릇된 사고방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어느 날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면서 "떨어지는 것은 떨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왜 자꾸 사람들은 떨어진 것을 집어올리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썩는 것은 썩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썩는 것을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방부제를 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떨어진 것은 떨어진 채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떨어진 것을 자꾸 들어 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흘러가 버린다. 결국 모든 것이 흘러가 버리고 늙고 병든다고 하는 그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들의 슬픔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넷째, 열반적정이다. 여기서 열반이라는 개념은 탐,진,치 삼독심의 극복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고통의 원인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고 내면적인 것이다. 즉,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 마음의 작용들로 말미암아 모든 고통이 유발된다.
이러한 고통들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면의 잘못된 생각들을 고쳐나가는 방법 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반이라는 개념 자체가 탐,진,치를 극복한 적정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정이란 고요하고 맑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경지이다. 즉, 어떤 진리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열반이라는 위대한 경지를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 나중에 문제시되는 것이지만, 이 열반적정을 실재한느 어떤 세계로 생각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오해와 혼선이 빚어진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 사법인은 사제 팔정도라는 가르침을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줄여서 말한 것이다. 네 가지의 법에 관련된 진리, 이것은 우주를 관통하고 있는 생명의 실상이다.
이와 같은 사법인, 네 가지의 진리를 깨닫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91 교리강좌   대승불교 운동
90 교리강좌   초기 불교의 윤리적 실천
89 교리강좌   초기 교단의 경제
88 교리강좌   교단의 구성과 생활
87 교리강좌   교단의 성립과 발전
86 교리강좌   사섭법(四攝法)
85 교리강좌   사무량심(四無量心)
84 교리강좌   수행의 길
교리강좌   사법인(四法印).무상과 깨달음
82 교리강좌   업(業)과 윤회(輪廻)
81 교리강좌   십이연기
80 교리강좌   가르침과 바른 길, 사제 팔정도
79 교리강좌    니르바나
78 교리강좌   미혹을 깨우치는 말씀들
77 교리강좌   부처님의 고행과 깨달음2
76 교리강좌   부처님의 고행과 깨달음1
75 교리강좌   출가
74 교리강좌   부처님 탄생
73 교리강좌   부처님 탄생지와 연대
72 교리강좌   한국불교의 특징
12345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